[매거진] 인생은 TMI로

프로축구 엔트리에는 통상 골키퍼를 세 명까지 두는데, 포지션 특성상 운동량이 크지 않은 탓에 주로 주전 골키퍼 한 명이 대부분의 경기를 소화한다. 많은 경기가 배정된 1부 리그 팀인 경우에나 세컨드에게 로테이션으로 가끔 기회가 주어지는 정도다. 그 둘에게 일어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서드 콜키퍼가 있지만, 사실상 그가 경기에 뛸 확률은 희박하다. 구단측에서도 비용적인 측면을 줄이기 위해 몸 값이 그리 비싸지 않은 선수(갓 프로에 입성한 어린 선수 또는 은퇴를 준비하는 노장 선수)와 계약해 훈련 파트너 정도로 활용한다고 한다.
그런 현실을 딛고 데뷔전을 치른 서드 골키퍼가 있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데이비드 마틴이다. 그는 2003년 하부리그에서 처음 프로에 입문하여 리버플 FC에서 서드 콜키퍼로 7년 간 몸담았으나 아쉽게도 데뷔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후로도 10년을 넘게 여러 크고 작은 클럽을 전전하다가, 2019년 웨스트햄에 입단한다. 그의 나이 서른셋. 신인과는 한참 멀고 그렇다고 황혼기라고 하기엔 아직 젋은 나이에, 또 서드 골키퍼라는 기약 없는 선택지를 받아 든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의 아버지 앨빈 마틴이 무려 21년 동안 598경기를 뛴 바로 그 팀에서. 레전드의 아들이 서드 골키퍼라니. 엄청나게 부담되는 자리였으리라.
묵묵히 때를 기다리던 그는 결국 팀의 부름을 받게 된다. 리그 8경기 연속 무승으로 팀이 흔들리는 위기, 주전과 세컨드 골키퍼 모두 이탈한 흔치 않은 상황. 강팀 첼시를 상대로 한 원정길. 2002년 9월 이후 첼시의 홈에서 승리가 없는 웨스트햄으로서 서드 골키퍼를 낸다는 것은 큰 도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압박감을 이겨내고 6개의 선방을 기록하는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웨스트햄은 1-0으로 극적인 승리를 따낸다. 그토록 염원하던 데뷔전, 종료 휘슬이 울린 순간 그는 경기장에 엎드려 운다. 잘 이겨냈따는 안도감이었을까, 아니면 지난 날에 대한 서러움이었을까.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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